Wednesday, May 28, 2014

예수님의 증인이 되자

저는 오늘 루가복음 24:48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증인이 되자’라는 주제로 설교를 합니다.
증인이라는 말은 ‘사실, 사안에 대해서 그것을 증명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증인은 시시비비를 가릴 때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증인의 유무에 따라 어떤 일이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단순한 교통사고에서부터 살인사건에 이르기까지, 개인간의 작은 문제는 물론 회사간의 큰 문제도 그것을 증명하는 증인의 유무에 의해 희비가 갈리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은 48절에서 ‘You are witnesses of these things(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다)’ 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3: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으로 인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것입니다. 신학적인 용어를 사용한다면 ‘소명(Calling)’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증인’이라고 하셨을까요? 이 말은 예수님께서 나를 필요로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해야할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예수님을 위해서 내가 할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어떤 일일까요? 우리가 어떤 일의 증인이 되어야 할까요?
46~47절, 성서에 보면,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기쁜 소식이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다”고 하였다.
첫번째는,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증인이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는 것을 매우 어려운 일이니다. 이 일은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았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제자가 도마입니다. 
요한복음 20:24-29절,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예수님 부활의 사건은 성서에 아주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목격자들이 있고, 증인들이 있기 때문에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가 성서를 눈으로만 읽었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성서를 읽는다는 것은 잠시 성서의 말씀이 나에게 비춰지다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45절,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서를 깨닫게 하시고…
부활의 확신이 없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열어 주셨습니다. 
마음으로 읽는다는 것은, 성서의 말씀, 성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행적을 하나하나 마음에 새겨본다는 것입니다.그리고 내 삶에 비추어 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내 삶으로 만들어 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내 삶이 될 때 우리는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성서를 읽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성서를 읽으시기 바랍니다. 눈이 아닌, 마음으로 성서를 읽는 교우님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음에 어떤 행동을 보였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했었고, 무서워서, 두려워서 한 곳에 모여 문을 잠그고 숨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경험하고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살았습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간 것입니다.
모두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시기 원합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결심하는 교우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번째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가르침의 증인이 될 수 있을까요?
무엇인가를 남에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해 확신이 있어야 하고,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선거에서 누군가를 선택할 때, 가장 큰 기준이 되는 것은 그 후보에 대한 믿음,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고, 마지막 심판날에 구원받을 것이라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남에게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확실하게 믿을 수 있을까요?
들어야 합니다. 뭘 듣습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세상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자라납니다. 이 믿음은 살아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굳건해집니다.
어느 정도로 굳건해질까요? 
베드로를 생각해봅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그는 세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정했던 사람입니다. 그것도 예수님께서 미리 베드로에게 말씀을 했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절대 아니라고, 절대로 예수님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펄펄 뛰던 사람이 막상 현실에서는 세번이나 부정을 했습니다.
이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고는 어떻게 되었습니다. 태산보다도 강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가 로마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다가 죽음을 당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과 같은 방법,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참으로 고통스런 죽음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처럼 죽을 자격이 없다고 자신을 꺼꾸로 매달아 달라고 했고 더 큰 고통속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렇게 강한 믿음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눈으로 읽지 말고 가슴으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가슴으로 읽는 말씀을 통해 교우님의 믿음이 굳건해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해 주십니다. 그런데 축복을 받기 전에 할 일이 하나있습니다. 예수님은 축복을 해 주시기전에 제자들을 예루살렘에서 베다니아 근처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베다니아는 어디일까요? 예루살렘성에서 감람산 동쪽 기슭이고, 예수님 승천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곳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나가셨을까요? 그냥 그 자리에서 축복을 하시면 좋을텐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가지고 나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예루살렘뿐 아니라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파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손을 들어 축복하셨습니다.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이 축복은 제자들의 증인으로서의 활동이 인간적인 사역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으로 되는 것이며, 이 사역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 축복이었습니다. 이 축복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어집니다.

지금 이 시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증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손을 들어 축복하고 계십니다. 이 예수님의 축복에 아멘 하고 응답하시는 교우님이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증인으로 사는 교우님에게 다시 한번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No comments: